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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츠비라는 브랜드는 왠지 친근감이 듭니다. 꿀벌이 생각나는 노란색의 제품도 귀엽고, 어딘가 괴짜 같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제품에 그려져 있는 것도 재미있죠.
벌꿀 특유의 촉촉함과 향기로움이 묻어나는 제품들을 쓰다 보면 왠지 모르게 안심하게 됩니다. 내 몸에 절대 나쁠 것 같지 않거든요. 특히 버츠비의 레스큐 오인트먼트(Res-Q Ointment)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준 연고 같은 느낌도 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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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버츠비 레스큐 오인트먼트 ©버츠비 페이스북 갈무리 |
실제로 버츠비는 한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브랜드입니다. 그 할아버지가 바로 버츠비 창업주 중 한 명인 버트 샤비츠(Burt Shavitz)죠.
버트 샤비츠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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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버트 샤비츠(Burt Shavitz) ©Capitalism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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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젊은 시절적의 버트 샤비츠 ©Flare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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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버트 샤비츠가 찍은 뉴욕의 풍경 ©뱅거 데일리 뉴스(Bangor Daily News) 갈무리 |
1960년대 후반, 그는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사는 삶이 꼭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게다가 그때는 TV가 확산되기 시작한 시점이어서 인쇄 산업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결국 그는 그가 34살이었던 1969년부터 뉴욕에 있는 산장 호텔 모홍크 마운틴 하우스(Mohonk Mountain House)에서 관리인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친구로부터 양봉업을 취미 삼아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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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가 일하던 모홍크 마운틴 하우스 ©모홍크 마운틴 하우스 갈무리 |
자연에서의 삶에 매력을 느낀 그는 본격적인 귀농을 하기로 마음먹죠. 그가 관리인으로 일하던 모홍크(Mohonk) 보다 더 조용하고 저렴한 곳에서 말이에요.
거기서 그는 신의 계시인 것처럼 양봉업자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당시 그는 친구로부터 벌통 하나를 받은 상태였는데요, 하천에서 우연하게 벌떼들을 발견하게 된 겁니다. 벌집 하나만 있어도 꿀을 팔 수 있으니, 더 이상 직업을 찾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그렇게 양봉업자가 됩니다. 그의 벌집은 26개로 늘어났고, 1년에 3,000달러를 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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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양봉업자로 일하는 버트 샤비츠의 모습 ©비즈니스 인사이더 갈무리 |
각종 공과금과 세금을 내고, 먹고 살 음식을 살 수 있는 돈이었죠. 규모를 더 키울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없었어요. 원하는 것만 해도 되는, 천천히 움직이는 삶을 원했기 때문이죠. 매해 7월 4일부터 가을 사냥철이 시작하기 전까지만 나가서 꿀을 팔았고, 그마저도 주말에만 나가서 판매를 했다고 해요.
그렇게 10여 년간 양봉업자로 살다 1984년, 그는 49살의 나이로 록산 큄비(Roxanne Quimby)를 만나게 됩니다. 당시 운전하던 자가용이 고장 난 록산 큄비가 히치하이킹을 했는데, 버트 샤비츠가 그녀를 발견하고 태워주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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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록산 큄비(좌)와 버트 샤비츠(우) ©비즈니스 인사이더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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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밀랍(비즈왁스) ©Farm and Fleet 갈무리 |
그녀는 주방에서 핸드메이드로 밀랍 캔들을 만들어, 1984년 11월 말 샤비츠와 함께 한 중학교의 크리스마스 페어에서 캔들과 꿀을 함께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하루 만에 200달러의 매출을 올렸죠. 그게 바로 브랜드 버츠비(Burt's Bees)의 시작이었습니다.
버츠비의 성공 비결
중학교 크리스마스 페어에서 시작된 버츠비는 1년 만에 매출 2만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87년에는 매출이 8만 달러를 넘었고, 1989년에는 무려 18만 달러로 매출이 성장하게 되죠. 10년 뒤인 1999년에는 1,400만 달러가 되었고요. 결국 버츠비는 2007년 미국 클로락스(Clorox) 그룹에 1조 원 넘는 금액으로 인수되었습니다.
버츠비 성공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큰 건 브랜딩이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버츠비는 브랜딩 되었는데요. 그 중 하나는 바로 버트 샤비츠였습니다. 버트 샤비츠를 브랜드의 얼굴로 내세우면서, 히피스럽고 독특하면서 재미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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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대만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자랑했던 버트 샤비츠 ©Fast Company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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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버트 샤비츠의 목판화 일러스트레이션 ©버츠비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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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버츠비 제품들 ©Tony Cenicola, 뉴욕 타임스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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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땅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상징하는 들판 ©Fotolia/Emoraes 갈무리 |
현실적인 운영 측면에 있어 버츠비가 성공을 향해 도약할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유통업체에 도매 납품을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기업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으니까요.
버츠비는 1984년 크리스마스 페어에서 200달러라는 성과를 낸 이후, 샤비츠와 큄비가 없는 돈 있는 돈 탈탈 털어서 마련한 400달러에서부터 시작된 브랜드였습니다. 처음에는 은행 대출을 받는 게 아예 불가능했거든요. 두 명 모두 대출을 받을만한 직업이나 신용이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은행 대출 없이 브랜드를 운영한다는 건, 불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없애가면서 브랜드를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동시에 영세한 방식으로 제품 판매를 꽤 오랜 시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걸 뜻했죠.
그래서 버츠비는 초기 4년 동안은, 버츠비를 첫 판매했을 때처럼, 온갖 페어와 페스티벌에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창업주 큄비와 샤비츠가 직접 판매를 했죠. 이 방식은 손님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었으나,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페어와 페스티벌 특성상 재구매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버츠비는 회사 전화번호는 커녕 창업주 큄비와 샤비츠 집에도 전화가 없어서 고객들이 연락하기는 더 어려웠죠. 연락책 역할을 해주던 사람이 있긴 했지만 불편했을 거예요.
게다가 샤비츠와 큄비는 페어를 갈 때면 숙박비를 아낀다고 차에서 자기도 하고, 판매 부스에서 몰래 자다가 블랙리스트에도 오르는 등 빡빡한 예산 하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몇 개월은 열정으로 버틴다 해도 3년이 넘는 기간은 버티기엔 꽤 긴 시간이었을 걸로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매 납품으로 시선을 돌린 건 현명한 선택이었죠. 1989년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에서 도매 쇼(wholesale show)가 열려서 버츠비가 참석했습니다. 이때 조나(Zona)라는 뉴욕의 럭셔리 부티크에서 버츠비의 테디베어 양초 몇십 개를 주문해가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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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1989년 당시 버츠비의 테디베어 양초 ©버츠비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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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조나(Zona) 부틱의 1994년 모습 ©Zona New York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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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1991년 당시 버츠비 립밤 ©버츠비 갈무리 |
마지막으로 버츠비가 크게 성공한 계기는 인재의 중요성을 이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버츠비는 1989년 옮긴 본사에서 1993년까지 4년의 시간을 보냈는데요. 1993년에는 직원이 44명에 매출만 350만 달러가 됐습니다. 30억 원이 넘는 금액이었죠.
회사 규모가 커지자 버츠비에서는 전문적인 인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습니다. 당시 메인(Maine)에 있던 본사는 너무 외진 곳에 있어 실력 있는 인재를 채용하기가 어려웠거든요. 회사에서 영화관 하나 가려해도 차로 한 시간이 걸렸으니, 아무리 구인광고를 해도 사람이 구해지질 않았던 겁니다. 당시 버츠비의 회계 업무를 했던 직원이 수학을 잘하던 14살 고등학생이었을 정도라고 해요.
거기에 더해 메인에서 사업을 하는 데에는 수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세금도 많았고 교통비도 비쌌죠. 게다가 당시 버츠비는 핸드메이드로 모든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체계가 전혀 안 잡히는 상황이었습니다.
버츠비에서 본사 이전을 검토하자 많은 미국 주에서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그중에 선택된 곳은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였죠. 버츠비는 1994년 초 1,670 제곱미터, 500평이 넘는 크기의 방직 공장과 그 부지로 본사를 이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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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버츠비 노스캐롤라이나 사무실 ©yTravel Blog 갈무리 |
노스캐롤라이나는 메인에 비해 여러 장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세금도 8분의 1 수준이었고, 교통도 좋은 데다 교통비도 저렴했죠. 또 레브론(Revlon), 폰즈(Pond's), 더 바디샵(The Body Shop) 같은 화장품 브랜드가 몰려 있었기에 인재를 구하기도 더 쉬웠죠.
하지만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죠. 노스캐롤라이나의 인건비는 메인에 비해 굉장히 높았습니다. 메인에서 버츠비는 인건비로 시간당 5달러를 지급했는데,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10달러 밑으로는 아무도 일하지 않으려고 했던 겁니다. 매출의 절반이 핸드메이드 제품에서 나왔던 버츠비 입장에서는 큰 문제였습니다.
이때 버츠비는 과감하게 핸드메이드 제품을 모두 단종시켜버리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15억이 넘는 매출이 사라지게 되었죠.
하지만 대신 버츠비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레블론(Revlon) 출신의 공장 매니저와, 랑콤, 보그, 빅토리아 시크릿에서 경험을 쌓은 마케팅 매니저 등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 버츠비에서 일하게 됐죠.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했던 록산 큄비는 예술적이고 창의적이지만 체계적이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에게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 채용했다고 말합니다. 그 덕에 수많은 MBA 출신들이 버츠비에서 일하기 시작했다고 하죠.
덕분에 버츠비 브랜드는 성장을 거듭해, 1998년에는 매출이 820만 달러를 넘에 이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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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1998년 출시되어 인기를 구가했던 버츠비 레몬 버터 큐티클 크림 ©버츠비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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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런던 코벤트 가든 버츠비 팝업 스토어 ©Alopex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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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런던 코벤트 가든 버츠비 팝업 스토어 ©Alopex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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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현재 버츠비 립밤 중 일부. 향이 많이 다양해졌죠. ©버츠비 인스타그램 갈무리 |
무려 30년 가까이의 전통을 자랑하는 그 립밤. 이번 주말에 매장에 들러 테스트해보며 버츠비라는 브랜드를 한 번 체험해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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