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이라고 해서 '흥'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흥망성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루이비통의 명성은 점차 시들었다. 오래된 고객을 위해 제작한 여행 가방이 ‘구식’이라고 평을 받았다. 입소문은 점차 퍼지기 시작해 루이비통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여행 가방에도 새로운 장이 펼쳐진 셈이다. 여행 가방으로써의 기능뿐만 아니라 이를 더욱 빛낼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해진 것이다. 루이비통엔 새로운 ‘피’가 필요했다. 이 때에 루이비통은 가스통 비통의 셋째 딸 남편인 앙리 라카미에와 지금의 LVMH 회장인 아르노를 만나게 됐다.
【여행에 경영·디자인 날개를 달다】
루이비통의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오던 때다. ‘구식’이라는 딱지로 루이비통의 위기가 찾아왔다면 ‘경영’이라는 요소는 절벽에서 날개를 달게 했다. 가스통 비통의 셋째 딸 오딜은 앙리 라카미에와 1976년에 결혼했다. 앙리 라카미에는 ‘스티로’ 강판 회사를 운영, 독일 회사 티센에 회사를 팔고 은퇴했다. 그러나 그는 결혼과 함께 루이비통의 경영자로 다시 복귀했다. 그는 먼저 루이비통 제품을 취급하는 중간 상인을 모두 정리하고 미국 뉴욕 및 아시아 전역에 직영점을 열었다. 또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요트 대회 등을 후원,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다. 1984년 루이비통이 매출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하며 브랜드 명성을 다시 회복했다.
1987년 루이비통과 모엣 헤네시가 합병하게 된 것도 이와 같은 배경이 숨겨져 있다. 앙리 라카미에는 두 기업을 합병해 LVMH를 만든 장본인이자 1988년엔 지방시 패션을 인수해 규모를 키운 당사자이기도 하다. 루이비통을 부활시키는 한편 기업의 규모를 더욱 확장하면서 앙리 라카미는 LVMH의 시초를 다졌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앙리 라카미에가 아닌 아르노 회장을 떠올리게 된다. 프랑스 패션 역사에서 앙리 라카미에와 아르노 회장 간의 치열한 인수합병이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으며, 당시 크리스찬 디올을 운영하던 아르노 회장의 품에 LVMH가 넘어갔다. 앙리 라카미에의 순간적인 판단 착오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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