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체험기] DAY 5 : 가장 많이 웃었던 제주에서의 하루

시시콜콜한 얘기들과 비현실적인 풍경들
기사입력 : 2021-09-13 10:21:38 최종수정 : 2021-09-13 13: 06 차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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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근두근. 아침부터 분주하다. 오늘은 친구 L이 오는 날이다. 제주에서 맞이하는 첫 손님.

#2.


L이 올 줄은 몰랐다. 방역대장이기 때문이다. 코로나에 워낙 민감해서 L과 다 함께 모이는 친구들 모임도 몇 차례 무산됐었다. 그런 그녀가 온다니.

그녀는 회사에서도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최초의 사람이다. 유통회사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나는 입사 직후 몇 달간 지점에서 수습기간을 보냈는데, 당시 난 사람들이 회사 생활을 왜 힘들다고 하는지 이해를 못 했었다. 그렇게 재밌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의 팔 할은 입사동기였던 L 덕분이었다.

우린 자매라고 불릴 정도로 붙어 다니면서 지점 곳곳을 탐방하곤 했다. 점심시간엔 직원 휴게실에서 세상 모르게 깊이 잠들었다 느지막이 깨어서 부랴부랴 사무실로 달려가기도 했고, 매장 직원들을 위해 비치된 다리 마사지기를 아무도 안 쓰고 있을 때면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해서 하나도 아프지 않은 우리 다리를 기계로 마사지하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저녁이면 L과 다른 동기 오빠들과 함께 먹던 스쿨푸드는 어찌나 맛있던지.

하얗고 동글동글한 얼굴로 웃으면서 “우와~!”하고 리액션해주는 L을 누구든 좋아하지 않기는 어려울 거다. 내 첫 직장생활을 대학생 시절보다 재미나게 만들어줬던 그녀가 제주에 왔다.

#3.


L과 함께 숙소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렀다. 밖에서 보기에 특별할 것 없어서 내가 매번 지나치던 곳이었는데, 그녀가 가자고 하니 일단 들어갔다.

와, 바깥이랑 안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겉으로는 흔한 동네 커피집처럼 평범해 보였던 카페가 초록초록한 마당을 품고 있었다. 정겨운 제주 시골 감성의 돌담이랑 집도 있다. 내가 제주에 온 뒤로 10번도 넘게 지나쳤던 카페였는데 이제서야 제대로 본 거다.

 

▲ 사진=차민경 기자 / 카페 "그리고천천히"의 뒷뜰.(2021.04.30)

 

▲ 사진=차민경 기자 / 카페 "그리고 천천히"의 뒷뜰.(2021.04.30)


요즘 핫한 MBTI 얘기도 하고, 심한 똥손인 내가 L을 찍어준 사진을 보고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며 그녀가 좌절하는 바람에 한참 웃고.

#4.

서우봉 해안로에서 하늘, 바다, 나무 그리고 말을 실컷 감상하고 내려오는 길에 우리는 호기롭게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제주 바위를 맨발로 걸으면서 발끝으로 제주를 느껴보기 위해!

그러고 나서 10초 만에 정신없이 신발을 신었다. 제주 바닷가 바위에는 엄청나게 큰 벌레들이 돌아다닌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 엄지손가락 2개 크기의 거대한 벌레가 바위 위를 쏜살같이 지나가는데, 벌레를 무서워하는 우리 둘은 순간 기절할 뻔했다. 해변가 바위에서는 반드시 신발을 장착하시길.

함덕해변은 바다 한가운데에 모래섬이 있다는 게 신비로웠다. 바다가 모래섬을 위해 일부러 자리를 내준 것만 같았다. 생애 처음 보는 비현실적인 광경이라 아주 잠깐동안 꿈속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 사진=차민경 기자 / 함덕해변. 꼭 바다 아래 섬이 있는 것만 같다.(2021.04.30)

 

▲ 사진=차민경 기자 / 함덕해변에서 신나게 노는 사람들.(2021.04.30)

 

여기서는 맨발로 들어갈 수 있겠지 싶어서 L과 함께 과감하게 신발을 벗고 모래섬으로 진출했다. 아 그런데 너무 차다. 4월 말의 제주 바다는 아직 차갑구나. 마구 뛰어서 모래섬에 도착해보니 바지는 형편없이 젖어있다.

발끝으로 느껴지는 고운 모래와 차가운 바닷물, 마치 바다 한가운데 들어와있는 기분.

#5.

늦은 오후에 방문한 세화해변은 함덕해변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해질 무렵이어서 그런가, 센치하고 고운 느낌의 바다였달까. 내 마음도 덩달아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함덕해변에서 신나게 뛰놀던 우리는 세화해변에서는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 사진을 찍었다. 아름답고 섬세한 세화해변에서는 왠지 다소곳해졌다.
 

▲ 사진=차민경 기자 / 아름다운 세화해변.(2021.04.30)

 

▲ 사진=차민경 기자 / 세화해변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바다.(2021.04.30)


#6.

저녁식사는 내가 추천했던 모다정에서. 방역대장 L은 마스크를 안 끼고 서빙하는 식당 사장님에게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다.

내가 잘못 데리고 왔나 후회스러워지려는데, L이 몸국과 접작뼈국을 한 입씩 먹더니 표정이 싹 바뀐다. “너무 맛있다. 왜 여기까지 오자고 했는지 알겠다” 심지어 나중에는 “여긴 사람이 워낙 없어서 (우리가 식사할 때는 손님이 우리 둘 뿐이었다) 사람 많고 마스크 많은 데보다 오히려 안전하다”는 말까지.

 

▲ 사진=차민경 기자 / 몸국(좌), 접작뼈국(우). 한번 맛보면 제주 여행 때마다 꼭 찾게 된다.(2021.04.30)

아 너무 귀엽고 웃기다. 맛있는 음식은 실로 위대하다.

#7.

오늘은 스쳐 지나갔던 것들을 다시 주의 깊게 보게 되었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있어봤고, 언짢음에서 만족스러움으로 급격한 태세전환이 일어날 만큼 맛있는 식사를 한 날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제주에서 가장 많이 웃었던 날이기도 했다.

▲ 사진=차민경 기자 / 이 귀엽고 웃긴 선탠하는 돌하르방 같은 날이었다고나 할까!(2021.04.30)

- 2021년 4월 30일, 제주여행 5일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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